처음 모로코라는 나라를 인지하게 됐던건 8년전 아일랜드에 잠시 지낼 때였다.
한국인 친구 한명이 여행으로 사하라 사막을 다녀왔다고 하면서 모로코라는 나라에 대해
그때 처음 인지를 하고 한번쯤 가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8년에 코이카 봉사단원에 지원하게 되었고 1지망도 아닌 2지망에서 모로코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삶은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시골에서의 삶은 사실 꽤 나쁘지 않았다. 집 주인은 경찰이었고 기관장도 매우 호의적이었다.
따박따박 월세를 직접 전화까지 해가면서 주는 나를 집 주인은 너무 좋아했다.
남들이 거주증으로 고통받을 때(동료 단원들은 경찰이 오라고 했다가 오늘 안된다고 내일 오라는 식으로의
일들을 너무나 많이 받았고 여성 단원들은 가끔 희롱에 가까운 발언들을 듣기도 했다.)
,나는 그의 전화 한 통에 경찰서로 가서 싸인만 몇 개 하면 끝이었다.
기관장 역시 내가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면 즉시 착수해서 당일 혹은 그 다음날에 무엇이든
결과를 가져다 주었고 나는 무사히 단원 생활을 코로나로 인한 긴급 출국 전까지 할 수 있었다.
물론 니하오 소리와 쉬누이(중국인) , 재키찬 등 그들의 열렬한 외침을 나 역시 피할 수는
없었지만 좋은 사람들로 인해 나쁜 기억은 다 휘발되었고 미처 마무리 못했다는 아쉬움과
끝을 못지은 마무리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나는 다시 모로코로 갈 준비를 했었다.
이후 모로코에서는 카사블랑카와 라바트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곳은 내가 느꼈던 그 모로코가 아니었다.
도산대로에서도 보기 힘든 차들이 즐비했다.
포르쉐나 아우디, 레인지 로버가 거칠게 하이빔을 쏘아대며 도로를 종횡무진했다.
벤츠나 마세라티를 몰고 나가는 대학생들도 있는 반면, 히치하이킹을 하는 대학생들도 많다.
너무나 극명하게 갈리는 그 사이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시도했지만
지속적이지 못한게 현실이다.
도서관을 지어주려고 해도 중고책, 특히 한국어로 된 책은 들여올 수 없다.
왜? 검열이 불가능하니깐.
모로코 왕국에서는 시민이 아니라 백성이 존재할 뿐이다.
백성은 우매해야한다. 그러기에 교육도 무상, 빵과 과일 등 기초 생활품은
정부에서 개입하여 가격에 조정을 가한다.
그래야지 불평 불만이 사그라드니 말이다.
비밀 경찰과 사복 경찰이 즐비하여 사찰은 일상이다.
테러라도 나는 순간,
왕의 입지와 재산에 위협이 가해지기 때문에 매우 철저히 진행된다.
무상원조로 지원되는 돈은 결국 다 위로 흘러 가게 되어있고, 정작 그 돈과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살아가게 된다.
여전히 그들에게 모든 아시아인은 재키찬이며 그들의 프레임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공간, 작은 집과 가족들과 비슷한 친구들이 전부일 것이다.
하염없이 카페에 앉아 작은 커피 한 잔을 두고 바깥을 쳐다보며 담소를 나누거나
그 돈마저도 없으면 그냥 그늘에 앉아 있는다.
어린 학생들이 새로운 기회를 주었을 때, 즐기는 모습과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즐거워진다. 하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 역시 지나갈 것이고, 현실적으로 그들의 삶이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며
가슴 한켠에 안타까움이 몰려드는건 어쩔 수가 없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지,
글쎄, 여기선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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