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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살이

모로코가 벨기에를 꺾은 날 (Feat. 역대급 카오스)

이변이 일어났다. 마지막 황금세대라던 벨기에는 모로코에게 2점을 내어주며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정말 모로코스러운 그들의 열기에 다시 한번 놀라고야 말았다. 

 

사건 당일에 나는 아주르- 메크네스- 라바트로 향하는 여정을 진행 중이었다. 

메크네스에 도착해서 'Black Pepper'라는 곳에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들어서자 예선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참고로 로컬 식당과는 다르게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곳이니 방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모로코 특유의 혼종 레스토랑인데 파스타와 샐러드도 있고 초밥롤 종류도 먹을 수 있다....

 

가게 전경
가게 내부

그리고 기차를 탑승하러  Meknes Al amir 역에 들어섰다. 이미 주변 카페는 전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역내 티비가 안보이는 한 자리가 있어 그쪽에 앉아 나는 인터넷으로 경기를 관전했다. 

 

재밌었던 점은 모로코 방송사의 중계속도가 더 느렸다. 처음 골을 넣고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는 걸 나는 미리 알고 있었고 5초 정도의 딜레이 후 사람들이 반응을 하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전반 도중 기차가 와서 탑승을 하였고 나는 계속해서 경기를 핸드폰으로 보고 있었다. 꼬마들이 어슬렁 거리며 어른들의 핸드폰을 보려고 했지만 인터넷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경기가 매끄럽게 중계되지 않는  듯 했다. 

나는 내 핸드폰을 옆에 있는 꼬마들에게 보여주었고 그들은 엄청난 집중을 보여주었다.

초집중 모드

그리고 마침내 교체 투입된 SABIRI가 프리킥 상황에서 첫 골을 넣었다. 기차 안이어서 나와 경기를 보던 꼬마 혼자만 소리를 질렀다. 

카페는 어땠을지 상상이 가니 웃음이 나왔다. 

 

첫 골의 감격

 

여기까진 좋았다. 모로코는 한 점을 더 득점하며 경기를 승리로 마쳤다. 여기까진 좋았다. 기차 안은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뭔가 불안했다. 내가 아는 모로코인들은 절대 이렇게 평화롭지 않을 것이기에..

처음 아주르를 갈 때 Rabat Agdal 역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거기서 출발을 했었는데 차를 가지고 다시 올 수 없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약속이 있던 Rabat Ville 역에서 내려서 상황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역에 나서 길을 얼마 나서지 않아 10대 무리들이 몰려와 '알레 쉬누이(가자 중국인!)' 을 연호하며 나를 둘러쌓다. 

당황하지 않고 나는 같이 맞춰 빙빙 점프하며 좀 돌았다. 하지만 멈출것 같지 않아 '싸피 싸피(충분해 충분해)'를 외치며 빠져 나왔다. 

 

난리도 아니었다.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모로코 국기를 휘날리며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며 가고 있었다. 

 

 

그 날의 광장

 

 

우리의 2002년도 이들의 2022년과 같았을까. 어쩌면 별다른 탈출구가 없는 이들에게는 이 한 번의 승리가 무엇보다도 값진 것 같다. 

화합을 다지는 월드컵이니만큼 이들의 축하를 조금이나마(제발 밤에는 좀 경적을 멈추자.. 경기는 오후 4시에 끝났는데...왜...) 거들며 

오늘 모로코의 마지막 경기와 내일 있을 한국의 경기도 양측에게 후회 없는 값진 시간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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